쿠르트 달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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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SS상급대장 ,경찰상급대장. 리디체 학살 등으로 악명 높은 전범이다.
2. 초기 행적[편집]
프로이센 왕국의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달루게는 1916년에 프로이센 군대에 입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동부전선에서 종군했고, 서부전선에서 부상을 입은 후 장애 판정을 받았다.
3. 나치당에서의 행적[편집]
종전 후 달루게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공학을 공부했고 학위를 취득했다. 1923년 나치당에 입당했고, 1926년 슈투름압타일룽에 들어갔다. 달루게는 1929년까지 SA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사단을 이끌었다. 1930년 아돌프 히틀러의 뜻에 따라 슈투름압타일룽에서 물러나고 슈츠슈타펠에 상급지도자[3] 계급으로 입대했다. 그는 SA와 반나치 세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고, 장검의 밤 사건 당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달루게는 질서경찰의 총수로서 막대한 권력을 가지기도 했다. 이렇게 나치당에서 입지를 다진 달루게는 1942년 SS상급대장[4] 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4. 제2차 세계 대전[편집]
쿠르트 달루게는 1941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과 민스크 학살 사건에도 관여했다. 또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의 유대인들을 리가와 민스크로 추방하는 명령에도 서명했다. 1942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암살당하자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의 부총독으로 부임했다. 히틀러는 달루게가 슈츠슈타펠의 고위 관료이자, 당시 프라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체코 총독으로 임명했다고 하지만, 원래는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무장친위대 대장을 임명하려 했다. 하지만 SS국가지도자였던 하인리히 힘러는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가 동부전선에서 바쁘기 때문에 총독에 임명되지 않도록 히틀러를 설득했다. 체코 총독은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가 명목상 총독이었으나 1941년 권한을 박탈당했으므로 실질적으로 달루게가 총독의 역할을 수행했다. 1942년 6월 SS대장 카를 헤르만 프랑크를 비롯한 다른 슈츠슈타펠 장교들과 함께 리디체와 레자키에서의 학살을 명령했다. 두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살해되었고 여자와 아이들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1943년 5월 달루게는 심근경색으로 중병에 걸렸다. 결국 8월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고, 독일 북부 포메른에서 남은 전쟁 기간을 보냈다.
5. 전후 전범 재판과 처형[편집]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 1945년 5월 영국군에게 체포되었고, 룩셈부르크와 뉘른베르크에서 억류되며 주요 전범으로 기소되었다. 1946년 9월 체코슬로바키아로 송환된 후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10월 24일 교수형으로 공개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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